“금수저의 삶은 내 기준 흙수저의 삶 ” 급이 다른 다이아몬드 수저 물고 태어난 5천억 자산가 여성CEO
현재 대한민국에서 방송을 종횡 하며 사업가로써까지 성공한 의사가 누가있을까 하고 살펴보면 여에스더를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여에스더는 각종 건강식품 및 기능성 화장품 등을 개발하고 판매하여 최근 매출 1000억 원대를 달성한 성공CEO로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기도하답니다.
생각보다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에 출연하면서 어떻게 보면 나이와 직업에 비해 철딱서니 없는 사장님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직원들에게 아낌없이 퍼주는 금융 치료를 해주며 좋은 인지도를 쌓는 듯한 과정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유튜브 방송까지 활동 영역을 넓힌 여에스더는 화려한 인생을 사는 것 처럼만 보였던 그녀의 모습 뒤에 평생을 싸워야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해결하려 노력 중에 있는 자신의 우울증과 삭막했던 가정 사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여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여에스더의 집안은 유복한 사업가의 집안 이였으며 셋째 딸로 태어나 남 부러울 것 없이 넉넉하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는데, 흔히들 이야기하는 일반적인 금수저가 아닌 범접 못할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녀의 기억에 따르면 여에스더의 할아버지는 대구에서 대구 일보 언론사 사주를 하셨고, 돌아가신 이병철 회장과 제일모직을 같이 시작했다며 그들 집안의 건물에 들어가는 입구는 마치 영화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철문처럼 엄청난 높이의 철문을 열고 들어가야 했다고 이야기하여 “다이아몬드 수저”라는 사실을 더욱 명확히 인증 시켜 주었습니다.
또한 별채에 바느질 하는 침모, 집사, 운전기사 등 자신을 따로 돌보는 보모까지 거느리고 있었다는 말에 다이아몬드 수저 여에스더에 대해 놀라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부유함과는 별개로 집안의 분위기는 가부장적인 면이 강했고 그런 분위기에 항상 기를 펴지 못했으며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손길로 자라온 것이 아니라 유모에게 맡겨져 자라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항상 고팠다고 합니다.
이런 가정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대학 시절부터 여에스더는 우울증을 알아왔고 치료하려 노력해오던 중 항상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던 여동생이 약 6년 전 안타까운 선택을 하여 생을 마감하면서 그녀는 다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3월에 MBN 예능 ‘신과 한판’에 여에스더가 출연하여 재벌가 수준의 생활을 누렸지만 정치 보복으로 인해 국외 추방까지 당했던 과거 가정 사를 고백해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여에스더의 할아버지는 특히 박정희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고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대구에 내려오면 자신들의 집에 방문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지만 1971년 대통령 7대 선거 당시 금기시되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선전물을 아버지가 몰래 언론사에 배포해 국외 추방이라는 실로 엄청난 보복을 맞게 되었었다고 합니다.
이 일로 인해 국내 거의 모든 사업체를 빼앗긴 할아버지는 위암에 걸려 돌아가실 때까지도 끝내 한국 땅을 밟을 수 없으셨으며 그 사건 이후 가세가 기울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에스더는 기울어진 집안 환경이 방 하나에 자매 4명이 함께 자야 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가족 간의 따뜻한 온정을 느낄 수 있었던 시절이라 자신의 인생에 있어 너무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이야기하며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였습니다.
풍족해 보이기만 하는 그녀의 삶 뒤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사연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이야기들입니다.